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막스 플랑크 (문단 편집) == 말년과 사후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Max_planck.jpg|width=100%]]}}} || || 노년기의 막스 플랑크 || [[유대인]]이었던 [[프리츠 하버]]를 변호해준 행보로 인해서 [[우생학]]과 [[반유대주의]]에 집착했던 [[아돌프 히틀러]]의 노여움을 샀다. 사실 [[다비트 힐베르트]] 같은 [[수학자]]도 그렇고 독일 지식인의 상당수는 [[나치]]와 [[반유대주의]] 정책에 소극적이였다. 당시 교수나 연구자로서 활동하던 유대인 혈통 인물들이 꽤 됐기에 독일 지식인 계층과 개인적인 친분을 쌓을 기회가 비교적 많았고, 굳이 그런 이유가 아니더라도 먹물깨나 먹은 지식인 계층이 히틀러의 선전, 선동에 놀아나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물론 제2차 세계 대전을 일으키기 전 히틀러는 과장 조금 보태서 모든 독일인들이 지지한다고 해도 될 정도로 압도적인 지지율을 등에 업고 있었다. 하지만 유대인 및 소수민족 학살과 제2차 세계 대전에서의 삽질 때문에 지식인들은 히틀러의 실체를 어느 정도 파악하게 되었고, 나치에 부역하던 [[베르너 폰 브라운]]이나 [[레니 리펜슈탈]] 같은 인물들도 훗날 문제가 될 수도 있는 흉악범죄는 저지르지 않는 선을 지키며 히틀러 및 나치당과 손절할 태세를 취하고 있었다.] 플랑크는 하버를 변호할 당시, 히틀러에게 "독일 문화를 만드는데 기여한 쓸모있고 똑똑한 유대인들은 제발 보호해달라"며 탄원했지만 히틀러는 "아무리 똑똑해도 유대인은 유대인일 뿐"이라며 완고하게 거절했는데, 플랑크는 히틀러의 인종주의적 완고함이 결국 독일을 무너뜨릴 것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는 일화가 있다. 결국 플랑크의 말 그대로 독일은 [[제2차 세계 대전]]에서 패전하고 말았다. 연합군에 의해 독일 최고의 엘리트들이 모이는 연구기관인 [[카이저]] [[빌헬름 2세|빌헬름]] 연구소가 이름을 변경하게 되었는데 그의 이름을 따서 [[막스 플랑크 협회]]가 되었다. 현재 [[포스텍]]에 아시아 지부가 있다. 그런데 이 연구소는 단순히 물리학 연구소가 아니라 독일의 기초 과학 전 분야를 망라하는 연구 협회 산하 연구소들의 집단이다. 더 중요한 것은 여기서 말하는 기초 과학이라는 것이 흔히 생각하는 [[자연과학]]에 한정되어 있지 않고, [[응용과학]]([[공학]]), [[사회과학]], [[인문과학]]까지 거의 모든 분야에 총망라되어 있다. 덕분에 막스 플랑크 조세 재정 연구소, 막스 플랑크 종교 및 인종 다양성 연구소, 막스 플랑크 미술사연구소 같이 언뜻 보면 왜 앞에 막스 플랑크라는 물리학자 이름이 붙어있는지 잘 이해가 안가는 연구소도 있다. ||<-2>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images.vcoins.com/xYq8K46y3nPQKGg2Fw5JDWz9Dq4oAM.jpg|width=100%]]}}} || || 플랑크 || [[독일/국장|독수리]] || 그리고 사후 [[1957년]]부터 [[1973년]]까지 사용된 [[서독]]의 2[[독일 마르크|마르크]] 주화의 모델이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